무협 얘기가 저번 주에 나와서 잠깐...
사실 오래전부터 저와 사귄 분들은 아시겠지만, 꽤나 좋아하는 테마고 관련 논문도 꽤 읽은 경험을 살려 적어보자면....
'이거시 무협이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선 그 협객행이 단순한 선이나 정의를 위한 영역을 초월해야하고, 그걸 작품 전반적으로 긍정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환협지, 색협지(안좋은 의미로)는 말할 것도 없이 카논 취급 받는 김용의 무협지에서조차
협은 '사사로운 정이나 개인의 신념을 위해 법조차 무시할 수 있는 깡을 지닌 자, 혹은 그런 간지(...)를 추구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 정이나 신념에 선악의 구분은 없어요.(그래서 무협지에 요사이 관점으로 보면 얀데레 히로인들이 많습니다!)
여하간 이렇기에. 똑같은 협객인데도 정파와 사파로 나뉠 수 있고, 심지어는 녹림객(얘네들 전혀 의적 아님) 같은 존재들조차 그들이 '협객'임은 작품내에서 아무 의심을 받지 않습니다.
신조협려에서 당시 정파의 최정점인 북개와 사파 최강자인 서독의 최종결전 같은 걸 봐도 여실히 알 수 있죠.
인생 내내 서로가 서로를 못죽여서(특히 서독이) 안달하던 둘이 다 늙어서 투로만으로 최종결전을 벌이고, 여기서 (당대 정의의 표상인!) 북개가 패배를 인정하고 서로 웃으며 동시에 죽는 광경을 작품에선 아주 낭만적으로 묘사합니다.
소오강호 같은 작품에서도 (여기선 정파 대부분이 위선자로 나오긴 하지만) 사파 인물 대부분을 의리와 패기는 있는 인물로 그리고, 심지어 현대 관점으론 용서가 안되는 강간마를 주인공은 의기투합해 형님 격으로 모십니다. (물론 권선징악을 위해, 강간마 캐릭터는 나중에 다른 사람에 의해 고자가 됩니다만;)
단순히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정의의 주인공'이 직접 나서서 해결한다.
이 부분에서 사회저항이나 비판의식을 담아 본격적으로 그리면 사회파(일본 추리물에서 한 때 대세)라 할 수 있겠고...
그러한 주인공 개인의 멋있음을 다루면 오히려 고전적인 영웅물이 되죠.(네. 여기서 슈퍼-파워를 끼얹으면 요즘 대세 슈퍼 히어로물이 됩니다!)
협을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그건 히어로가 아닌 비질란테, 혹은 피카레스크인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단순 서브컬쳐가 아니라 아예 고전문학 쪽으로 가자면 협을 다룬 소설의 대명사 수호전으로 가보죠.
사소한 원수를 갚겠다고 1데스(그것도 실은 미수) 36킬을 선사하는 무송이라던가
어린아이를 유괴 납치한 다음에 살해하고선 우정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 운운하는 송강(이 놈은 무려 주인공)이라던가
탈옥을 위해 별 관계도 없는 민간인 살해마저 주저치 않는 이규(이 자식은 분명 작품 내내 죽인 관군보다 민간인 파생피해가 더 많은 놈일 거야)
전부 작품내에선 '싸나이'다운 호걸이자 대협, 무협입니다.
...사실 아주 쎄~한 장르에요. 무협은.
야쿠자들이 스스로를 임협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부분을 아전인수 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저런 막장인생을 주인공은 걷지 않지 않느냐...
그건 주인공이라서고, 그래서 정의를 지닌 협 중의 협, 의협이 되는 겁니다.
뭐 이조차도 아닌 주인공도 제법 많은게 이 장르기도 하고요.
댓글 (3)
아 중요한 포인트를 빼먹었네
'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 신념에 '휴머니즘'은 없다는 겁니다. "목숨 따윈 싸구려다. 특히 내 것은" 이란 대사가 제일 잘 어울리는 장르죠.
의협이라는 주인공조차, 애국심이나 민족의식 혹은 니힐리즘을 관철할 뿐 휴머니즘은 정말 안맞는 옷입니다.
홍콩 느와르가 '권총을 든 무협'으로 평가 받는 건 이 정서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죠.
서양인이나 그 문화가 대세인 현대인들은 이 부분을 불편해하고, 아예 B급 서브컬쳐의 감각으로 비트는 방향으로 갑니다만...(예를 들어 킬빌)
대략적으론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협: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서 법따윈 상관없어!
의: 의리(신용)를 지키기 위해서 법따윈 상관없어!
무: 이러한 의와 협을 관철하려면 싸워서 이기는 놈 말이 다 법이야! (그러나 협과 의에 의해 상관없어! 당하는게 로망이기도 함.)
이것들을 로망으로 여길 때 무협지라고 봅니다. 물론 배경이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역사이거나 가상의 중국이고요.
아예 국법 따위가 등장하지 않는 요괴나 선인 등이 등장하는 세계관에서도 내부적인 법이 있고, 그것을 무겁게 여기지만 협과 의에 의해 부정당하는 로망으로 성립되고요.
막장 인생이라면 막장인데 동화에서 "그리고 영원히 행복했습니다" 이후가 등장하지 않듯, 엔딩이후가 없으니 일단 싸워서 이긴 시점에서 잘 종결되버리죠.
요즘 유행어를 빌리자면 '야! 우리가 선악이 없지, 가오가 없냐!'로 정리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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