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성과 장면 만들기

캐릭터성, 캐릭터의 개성이란 무엇인가? FATE룰이후 "면모"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하지요. 캐릭터성은 일방적으로 등장해서는 안됩니다.




<예시상황>

전사A가 용에 대한 복수심이 있다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을 만났습니다. 그럼 복수에 불타 공격을 하거나, 참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의 상황입니다.


1) 공격합니다. 캐릭터성을 살렸습니다.

2) 참습니다. 캐릭터성을 살렸습니다.




1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2는 이해가 어렵죠.

논리적으론 참았는데 캐릭터성이 드러냈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예시상황에 숨겨져있는 A의 캐릭터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2를 이해할 수 없어요.

왜 A는 참아야합니까?

흔히 생존이라는 간단한 전제조건으로 인해 참는 것도 당연한 선택지처렴 여겨져서 그렇지,

예시 상황에서 A가 참아야했던 캐릭터성을 빼먹어버려서 참는게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선택지가 안되는것처럼 여겨지는것이죠.

선택지가 존재한다는건 2가지 캐릭터성의 충돌이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 충돌속에서 어느 캐릭터성을 우선시 할 것인가 하는 선택지라는게 생기는겁니다.


A는 용에대한 복수심이라는 캐릭터성과 옆에 있는 동료의 목숨의 소중함(또는 지금 부여받은 임무 등)의 캐릭터성이 갈등을 빚기 때문에 참는다라는 선택지가 가능한것이죠.

만일 A에게 수다쟁이라는 캐릭터성이 있었다면, 1)공격한다, 2)수다를 떤다라는 선택지가 주어졌겠죠.


그렇기에, 용에 대한 복수심으로 공격을 선택한 것 역시 캐릭터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이 되는 것이지, 캐릭터성 사이에 충돌이 없다면 용을 공격하기는 캐릭터성을 드러낼수가 없게되요. 그저 뻔한 행동에 불과하죠.







여튼 선택지가 주어졌을때 어떠한 캐릭터성을 드러내느냐는 고민이 되는 문제입니다.

대체로 수많은 RPG경험자들이 내놓은 대전제는 본인을 포함한 모든 플레이어들가 즐거운 선택지를 고르는게 좋다고 제시할 뿐이죠.




게이머 플레이에서는 보다 효율적인 보상에 도달하기 위해 선택을 하는 것이고요. 이쪽도 캐릭터성을 배제하는게 아니에요.


전투상황을 예를 들어보면 이것은 단순히 이야기적 관점만이 아니라 전투 상황에서 저 멀리 있는 용을 먼저치느냐, 아니면 동료를 구해주기위해 포션을 먼저 먹이느냐 등에서도 나옵니다. 어떠한 선택도 캐릭터성을 살린 것인데, 캐릭터성을 살렸다는 생각을 못하고 게임적인 효율성을 위한 선택으로만 해석해버리면 그 인물의 캐릭터성을 부정해버리는것이에요. 인간은 불완전하니 오락가락하기 마련이기에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하는 것에 포커스를 두기보다는 이런 캐릭터성이 강조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해줘야해요. 다른 플레이어가 해석해주지 않은채 넘어가니까 롤플레이를 안하는 것 처럼 취급되는거에요.





흔히 몰입형 플레이(메소드 플레이)에서는 이러한 캐릭터에 플레이어가 빠져들어서 선택하는 게 진정한 캐릭터다움이라는 형태라고 말하는 부류도 있어요. 이쪽을 해야 캐릭터성을 살렸다고 하는거죠. 이건 플레이어가 어느 캐릭터성을 드러낼지 내적갈등을 하는게 밖에서 보이기 때문에 롤플레이를 하는것처럼 취급되요. 하지만 캐릭터나 플레이어의 내적 갈등은 중요하지 않아요. 갈등을 통해 드러내는 캐릭터성이 중요하고, 캐릭터성이 연속해서 드러나는 흐름으로 인해 캐릭터성을 확립하는것이 캐릭터성을 살리는거에요.





마우스가드라는 룰은 위 2가지 중 어느쪽을 포커스 삼아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제가 의도하는 작가주의적 플레이는 만들어지는 장면이 재미있는가가 제일 중요해요. 장면이 재미있고, 이야기가 재미있는건 보통 캐릭터성 드러나는 장면이어야해요. 캐릭터성이 드러나려면 캐릭터성이 충돌하는 상황이 던져져야해요. 본성과 목표가 충돌하고, 신념과 임무가 충돌하고, PC끼리의 목표가 충돌하는 장면이요. 그리고 거기서 선택받는 캐릭터성은 이어지는 다음장면이 재미있는 캐릭터성이어야해요.


혼자서 캐릭터성을 해석해서 "얘는 이런 애니까 이렇게 할거야"가 되버리면 노잼이 되기 쉬워요. 다음 장면에는 캐릭터성끼리 충돌을 할 수 없는 뻔한 장면이 나오기 마련이에요. 저런 플레이를 하면 캐릭터 내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충돌에 대해서 "합리적인 변명"이 나와요. 합리적이기에 잘못되었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반대로 뭘 해도 상대는 매우 합리적인 해석을 할테니 저런 캐릭터와 충돌을 만들기보다는 피하고 싶어지거든요. 오직 주사위(운)에 의해서만 그러한 합리성을 격파할 수 있는데, 격파당한 입장이나 격파한 입장이나 "불합리한 결과"였다고 받아들이게 되요. 처음부터 캐릭터 내적으로 불합리했으면 불합리한 결과조차 그러려니하는데 말이죠.





상황: 아포포에게 들켜서 뭔가 모략을 하기엔 어렵다. 유리는 모략가라는 캐릭터성이 있다. 진심으로 개심한다는 캐릭터성은 아예 없다.


1)모략한다.

2)개심한다.



캐릭터성을 드러내는 선택지라는건 충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다시 말하자면 없던 캐릭터성을 창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소설에서 "아포포에게 들키자 유리가 개심했다"고 하면 말도 안되는 급전개라고 욕을 먹겠죠.

하지만 공동창작의 관점에서보면 일관성을 잃었지만 그럴수도 있지가 되거든요.

다른 플레이어가 그걸 말이 되게 하기 위해서 별의별짓을 하게될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누누히 마스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달라라고 요구를 해오고 있는겁니다.


캐릭터성의 한계에 갇혀버리는건 이 플레이에선 그다지 의미가 없어요.




꼭 개심같은걸 할 필요는 없었지만, 굳이 아포포에 발각됬다고 흑막으로 숨어버리는건 합리적인 선택의 연장에 불과해요.

질 걸 알면서도 칼싸움을 거는 것이야말로 불합리하지만 가장 극적인 장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귀중이형이 이기더라도 죽였다는 목표를 포기하는 형태의 협상을 해줬을 가능성도 높아요.

죽었다면 오히려 죽었기에 그의 유지를 이어받는 인물이 멋진 인물이 되겠지요. 하수인이 되는게 아니라요.


제가 체크를 받아서 썻다면 유리가 아포포를 죽이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아포포가 공격하는 갈등을 만들되 유리는 도망치는걸 목표로 하려고 했어요.

그러면 전사가 아니더라도 천성으로 다 굴려서 도망갈 수 있으니 격차가 적고, 유리가 도망치는데 문제 없었을거라고 봐요.

이랬다면 흑막으로 숨어도 더 멋지게 퇴장했겠지요.



이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멋진 장면"인겁니다.

댓글 (1)

RNarsis 2018.09.04 01:46

핀트가 살짝 다르지만, 후기에서도 언급했었고 아예 엇나간 얘기는 아니니까 살짝 다시 적자면,

특정 세계관이나 장르 클리셰를 모티브로 한 플레이를 할 때, 그 기본 전제가 되는 걸 무시하고 시작하면 모두와 합의하기 힘들게 되거나, 모두와 합의하는 순간 '그럼 모두 그 겜 굳이 왜 하는 거야?'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마우스가드의 세계인 이상 쥐들은 근본적으로 인간과는 비교가 안되는 개인주의자들이고, 자신의 쥐권(?)을 포기하거나 위탁하면서까지 위대한 이상이나 사회적 통합을 추구하는 쥐는 더 이상 쥐가 아닙니다. 마우스가드란 조직 자체가 어느 정도 필요악인 측면이 있어요. 거기서 더 나아가는 시점, 남들과 소통하기는 커녕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플레이어가 그와 반대되는 캐릭터를 담당할 경우, 그 과정 자체를 즐겨야지 그 이상의 빅 픽쳐나 큰 그림을 '당연하거나' '합리적으로' 얻어내길 애당초 기대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왜냐. 그 캐릭터 자체가 그 세계에선 '미친 놈'이고 '불합리의 표상'이에요. 중2식으로 말하자면 '세계의 적'입니다. 아무리 멋진 이상을 말하고 철저한 계획을 꾸며도, 정작 그걸 이해하고 따르는 쥐들은 없어요. 전부 제멋대로 유리하게 오해하고 동상이몽에 빠져서 실은 진정한 의미로 조직이라 할 건 처음부터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겁니다.  


따라서 이런 한계를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어처구니없는 억지력이나 불운으로 백년대계가 무너지는게 장르 클리셰죠.(어떤 의미 성공하면 그 시점에서 더 이상 마우스가드의 세계라 할 수 없으니 게임 종료죠. 전 오히려 고작 2년 동안의 음모로 그웬돌린이 여기까지 몰렸다는게 여태까지의 주사위 운이 전부 성공했기에 '잠깐 동안' 가능했던 기적이라 봅니다.) 따라서 그 부조리함조차 주인공 보정이 자신에겐 없다는 메타개그로 즐기는 굿루저 센스(좀 니시오 이신 풍의 얘기가 되네)가 필요한 겁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평가지만 사실 유리 이상으로 이질적인 쥐인 콩키가 그나마 인정받는 건, 그 이질성의 피드백이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갈등 연출을 그 개인과 그 주변에 한정짓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왜 우리는 인간이 아닌 쥐로 플레이를 하는가, 왜 일반 상인이나 반역자 무리가 아닌 하필 '마우스가드'인가(PC인 시점에서 히어로여야 한다면 룰로 구현 안되서 그렇지 애당초 검은 도끼 같은 놈도 있잖아!)....라는 부분부터 다시 되짚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마우스가드를 떠나,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D&D에서 왜 '겁장이 모험가'는 가능해도 '싸움 잘하는 마을사람'은 해서는 안되는가, 시노비가미에서 '배신하고 임무를 저버리는 닌자'는 가능하고 심지어 마스터가 부추겨도 '비밀을 싸구려 취급하는 닌자'는 메이킹 단계에서부터 거부되는가, 똑같이 제4의 벽을 넘나드는 캐릭터인데, '데드풀'은 히어로로서 용납되고 영화화까지 됐는데, '슈퍼맨 프라임'은 빌런으로서도 영 실패한 캐릭터가 되었는가... 같은 얘기를 나눠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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