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은 뒤에 덧붙이는 것

 (좀 하이한 기분에, 불현듯 생각나서 메모 삼아 적어둡니다.)


 타임라인이나 조직간 피드백을 빡빡하게 짜뒀을 때 생기는 문제점의 하나는 '공을 들이면 들일 수록' 의외로 플레이의 흐름이 루즈해지고, 기세가 죽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플레이어 캐릭터들의 시점, 관점이 여러개로 갈릴 때 이런 문제가 생기는 데요.


 이 경우, 타임라인이나 피드백의 논리성, 정합성보다는 플레이어의 몰입도나 현장감을 중시해서 세션을 진행시키는 쪽이 좋습니다.

 이렇게해서 당장의 플레이 자체를 살리는게 훨씬 이득이거든요.

 합리화 시킬만한 설정은 나중에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누군가 타임라인이나 조직 설정의 빈틈을 빌미로 문제를 지적한다면, 그 거야 말로 다음 전개나 반전의 떡밥을 스스로 제안하는 셈이 되니, 꽃놀이 패.

 망해도 청와대는 불태울 수 있고

 흥하면 맛스터는 애드립을 치면서도 계획대로 짤을 쓸 수 있게 됩니다.


 비슷한 이유로 플레이어는 자신의 컨셉이나 과거 설정과 현재 선언의 논리적 정합성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과거 설정은 업어치나 메치나 결국 수습용 핑계라고. 사실 다른 플레이어는 커녕, 마스터조차 별 신경 안쓰는 경우가 태반. 

 이 부분에 얽메여서 잘 풀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기존 합의 여부와도 다른 별개 차원의 이야기.

 현재의 전개를 기반으로 과거의 설정을 촘촘하게 완성한다.

 중요한 건, 현재 상황 전개와 상대하고 있는 캐릭터(PC든, NPC든)와의 플레이 이후 쌓아둔 인간 관계.

 이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야 망해도 이해하기 편하고 예측 가능한 캐릭터는 구현할 수 있고 

 흥하면 모두에게 인상이 남는 멋진 캐릭터가 남는 거죠.


 물론 룰 상의 대전제(D&D 장르의 엔딩각 이전 파티 브레이크 불가, 호러 장르의 엔딩각 이전 도주 불가 등등)는 지켜야 겠죠. 

 장르 대전제가 깨지면 장르 선택의 이유 자체가 없어지니까...

댓글 (5)

nefos 2018.05.12 00:40

장르의 대전제라는 것도 약간 미묘하긴한데 여튼,


플레이어가 본인 캐릭터의 컨셉이나 설정을 논리적 정합성의 근거로 따져서 행동하면 혼자만 아는 비밀의 논리로 행동을 하죠. 이렇게 할 예정이라고 대놓고 어필하고 있을땐 거기에 맞춰서 상호작용이건 협상이건 대비가 가능하지만 아니라면 서로 싸우자는 상황만 되니까요. 설정은 다른 플레이어가 내 캐릭터를 봐줌으로서 이런 선택지가 어떠냐고 제안하여 내 캐릭터의 선택지를 넓히는 용도로 사용하게끔 하는게 적절하죠.


룰북에서 적으라고 하는 기본 설정값(D&D 3rd로 따지면 레이스, 클래스, 얼라이먼트 등이고 5판엔 백그라운드와 퍼스널리티까지)의 전형적인 모습조차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한 두개의 개성 포인트가 아니라 디테일한 백스토리를 만들고 그걸 중심으로 행동하는 것도 넌센스가 아닐까 싶긴하더라고요. 캐메하라고 하면 백스로 소설 쓰는거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

RNarsis 2018.05.12 03:19

장르의 대전제라는게 단순 합의로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플레이어들, 제작진들의 문화 경험, RPG 플레이 경험부터가 서로 다름)보니 항상 미묘하게 되는데,


역으로 말하면 그걸 룰에서 막연하지도, 치졸하지도 않은 적정 라인으로 확실하게 제시하고, 궁극적으론 그게 그저 썰로 끝나지 않게 메커니즘에서부터 지원하는게 요근래 RPG 시스템의 도전방향이죠.

nefos 2018.05.12 18:12

서바이벌에서 엔딩 직전에 파티 절반이 죽어서 미뤄지는 사태가 없다니 이런 감사할수가!

호러 게임이면 중간에 하나 둘 죽거나 탈주해줘야 분위기가 산다고 생각해서요.


대전제 자체가 미묘하다기보다는 실제 플레이에선 그걸 깨먹는 일이 생각보다 잦다보니 대전제가 의외로 성립하지않는거 같기도해서...

RNarsis 2018.05.12 20:33

전 말씀하신 상황에서 갑분싸를 훨씬 많이 경험해서


이러니 서로 같은 장르를 연출하기로 합의해도 온도차가 크게 나니 미묘하긴 하다는 얘기지요

RNarsis 2018.05.12 21:08

따로 쓰기에도 뭐하니, 여기다 덧붙이는데

 

요사이 (트랜드 상) COC 관련 논의를 자주 보게 되는데,

가장 많이 플레이 테이블이 박살나는 이유가

 

하다보니 '위험해 보여서', '내가 처리할 영역이 아닌 것 같아서'

아무도 도전하지 않고 회피하거나 아예 집에 가버려서(...) 진행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 대체로 마스터가 트롤러 NPC를 만들어 강제 진행을 하거나, 고립 설정이나 시간 제한을 만들어 도주가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해서 넘기는데

이게 한두번이면 모를까, 이런 억지가 쌓이면 쌓일 수록 (본문을 참조하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마스터가 공을 들이면 들일 수록)

플레이어들은 작위감을 느껴서 짜게 식고 최악의 경우 게임 외적인 갈등까지 생겨버려죠.

 

결국 이 부분은 궁극적으론 플레이어들이 '호러 장르의 클리셰적인 행동'(흔히 코미디 영화 등에선 비웃곤 하곤)을 합의하고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선언하기로 하고 시작하는게 유일한 대안인데, 서브컬쳐가 흔히 그렇듯이 80년대엔 클리셰가 90년대엔 드립 레벨로 추락하기도 하고, 클리셰를 벗어나려다 통수맞는 연출이 더 재밌을 때도 있고, 클리셰를 맥거핀으로 활용하는 반전도 있곤 해서 (분명 모두가 '자기가 생각하는 장르 대전제'를 지켰는데!) 서로 핀트가 엇나가고 이 때 일일이 서로 의도를 대놓고 밝히며 미세조정을 하려들면 또 여기서 현자타임이 와버린단 말이죠. 

 

결국 이 부분은 (마스터 포함) 플레이어 어빌리티 이전에 룰 가이드라인이나 메커니즘 차원에서 해결하는게 최고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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