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이번 캠페인에서(사실은 저번 캠페인에서도 꽤 나오긴 했지만) 마스터의 준비가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플레이어와 마스터의 노력이 서로 공회전을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AWE의 흐름을 서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들은 AWE을 피아스코 부류의 인디 성향 스토리 메이킹 게임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래서 판정 굴림의 성패가 설정 결정과 이야기 전개의 주도권을 잡는 행위라 인식하고,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굴림에 부담감을 느끼며 가급적이면 굴림 없이 넘기려고 하거나 전개의 호흡조절을 위해 자진해서 트롤링(이라 하긴 미묘하고 자발적 안티테제라고 할까요? 여하튼)을 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마스터는 또 이 시스템에서 자신의 역할을 WOD 같은 라이브 액션 장르의 '스토리 텔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역할이 갈팡질팡하는 전개의 정합성을 맞추고, 장르 클리셰가 통할 수 있는 세계를 창출해내어, 부드럽게 준비해둔 이야기의 도달점으로 플레이어들을 끌고 가는 역할이라 보고 있지요.


 그런데, AWE의 방향성은 둘 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AWE의 방향성은 RPG에서의 실제로 플레이어가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어떤 특정한 장면의 멋진 연출'이나 캐릭터에 내재된 플레이어의 '욕망 구현의 충족감'이지 '1라운드 1억데미지'나 '최고효율 빌덕질'은 부연설명적 요소였고 ''잘 짜여진 플롯'이나 '정합적인 배경세계에 기인한 깔끔한 개연성'조차 실은 성립불가능한 동상이몽에 불과했다라는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플롯과 전개는 타임 테이블이나 다이나믹한 MC(마스터) 액션에 맡기고, 배경 문제나 개연성은 장르 클리셰나 그 장르에 대한 팬심으로 '넘기길' 바랍니다. 끊임없이 나오는 모르면 먼저 질문하라와 마스터링 지침 1번인 "플레이어의 팬이 되라." 이걸 단적으로 드러내는 요소죠.


 AWE에서 판정의 굴림 결과 장악할 수 있는 건 '그 순간의 연출' 뿐입니다. 아주 개인적인 영역이고, 그 영향이 넓어져봐야 PC 파티 내부에서 그칩니다. 엄밀한 의미로는 설정은 최초에 결정된 이후 그 표현 양상이나 디테일적 요소가 바뀔 뿐 본질적인 의미로는 변하지 않으며, 이야기의 전개와 종결은 플레이어도 마스터도 기본적으론 건들 수 없는 상태로 흘러갑니다.(물론 그 시스템 자체는 마스터가 짜두는 것이기에, 마스터는 플레이어가 이 지점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경우 차라리 공개해 플레이어 지식으로 사용하길 권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판정으로 바뀌는 건 실은 (하위)장르 뿐'이라 말한 건 이런 의미입니다.

 사실 이 지점 때문에 판정 자체의 난이도는 꽤 널럴한 편이며, 그 피드백이 두려워 일부러 판정을 거부하거나 판정에 성공해도 곤란하도록 억지로 전개를 꾸며낼 필요가 없습니다.


 마스터도 자신의 역할이 '텔링'이나 '프로듀스'가 아닌 '튜닝'이란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주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전개의 속도가 자신의 예측을 전혀 따라잡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앞서 간다면, 예측치를 알려줘 속도 조절을 할 것을 요구하는게 베스트고, 그마저 불가능하다면 그 상황을 '그대로 둔 채' '지정된 전개'를 발동시키고, '팬심'으로 그 발동을 극복할만한 요소를 플레이어에게 끌어내거나, 역시 '팬심'을 기반으로 다이나믹하게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지정된 전개'까지 '스무스하고 개연성'있게 현재 상황을 '강제로 이어붙'이는 건 잘해봐야 월권이고, 꼬이면 플레이어들의 욕망 구현을 그간 별 관심도 없던 리얼리티가 가로막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덕스럽게 말하면, 울트라맨이 이젠 최종화라 출동 3분 후에 죽을 게 뻔하더라도 처절하게 괴수와 싸우다 죽길 바라지, 출동하기 위해 마하의 속도로 날다가 초음속의 벽에 부딪혀 목 뼈가 부러지는 위기에 처하길 원치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물어보지 않는 개연성은 지킬 필요가 없고, 장르 클리셰는 제반 사정을 무시하고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거지, 그걸 마스터 스스로를 포함 누군가에게 납득시키거나 딴지 걸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뭐 바쁘다는 이유로 마스터도 안하려 들고, 해도 절대 자기 한 말 자기가 안지키기로 소문난 제가 적을건 아닌 듯 하지만 일단 나름 길게 생각한 것이니 메모 삼아 적어둡니다.

댓글 (1)

happyhappycrazy 2016.11.05 23:01

MC가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다보니 플레이어와 진행 관계가 바뀐듯하네요.

플레이어가 의문이 생겼을때 해결이 아닌 생길법한 문제를 사전에 질의 함으로 진행상 MC와 플레이어의 역할이 바뀐듯 하네요.


본문은 MC로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C로서 굳이 표출되지 않은 의문이나 모순을 미리 고민할 필요는 없던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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