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캐릭터 다루기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어제 플레이가 이 글을 적을 동기는 되었지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 본인을 포함한 일반론으로 딱히 누군가를 특정해 적는 글은 아닙니다. 어제 플레이 관련해서 할 말은 이미 피드백 시간에 말했기, 저 개인은 일구일언도 더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0년전 게임매거진 시절 RPG강의에서도 항상 나오던 얘기 중의 하나가 '과묵한 캐릭터는 만들지 말아라'였습니다. PC와 NPC를 막론하고 과묵한 캐릭터는 필연적으로 미스리드를 일으키고, 심지어 초보자가 이런 캐릭터를 다루다보면 미스리드를 '의도'해서 과묵한 캐릭터를 만드는 나쁜 버릇을 들이는 일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년이나 지나보면 시스템도 플레이어 방법론도 발전하는 법, 요사이 트렌드와 제 나름 경험에 맞춰 과묵한 캐릭터를 플레이에 도입하는 팁을 적어볼까 합니다.
1. 백면상
: 대사 대신 표정이나 시선 묘사로 의사소통을 대신합니다. 단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직설적일 것. '눈살을 찌푸려요.' '조용히 분노합니다.'는 식이 아니라 마치 내면 나레이션이라도 하는 듯 "'그는 나의 소중한 제자였다. 그 녀석을 죽이다니 너희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라는양 입술을 깨뭅니다."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지나치게 너저분한 연출이 아닌가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RPG는 시각매체가 아니고, 인간이 얻는 정보의 80%는 시각에서 나온다는 걸 생각합시다. 사실 이렇게 표현해도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캐릭터의 이미지나 정보의 절반도 다른 플레이어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직설적인 건 싫다? 영상매체나 게임에서 직설적 나레이션 없이 표정이나 시선 묘사로 정보를 전달 할 때 얼마나 많은 상징이나 기호를 사용하고, 컷의 흐름 기법을 활용하는지 실제로 분해해 가며 읽어본다면,(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1~2페이지 분량의 스크립트가 단순 대사형 문장으로 변환할 경우 기껏해야 두 줄 정도란 걸 깨닫는다면) RPG에서 이런 기법을 상황전개에 맞춰 리얼타임으로 활용하는 건 불가능의 영역에 가깝다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2. 메신저
: 캐릭터 이미지상 백면상으론 도무지 그 맛이 살지 않는다면 다른 플레이어(상황에 따라선 마스터)와 합의하여 '과묵'한 캐릭터와 세트로 활동하는 '떠버리' 캐릭터를 만듭니다. '떠버리' 캐릭터는 과묵한 캐릭터가 해야 하는 말(or 알아줬으면 하는 말)을 대신 말해줍니다. 여기서 오버나 왜곡이 들어가고, 이를 정정하는 등 꽤 재미난 인간관계나 갈등구조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요.
3. 터놓을 수 있는 자
: 2번의 변화형. 특정 캐릭터(당연 대부분의 경우 같이 활동하는 역이거나, 플롯상 매우 깊숙히 얽혀 있는 역이어야 합니다.)에게만은 모든 것을 터놓고 과묵한 설정이 없는 양 편하게 이야기합니다. 2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그럴 수 있는 이유'를 여러가지로 만들어 활용할 수 있겠지요. 요즘은 이런 쪽을 서포트해주는 시스템도 많더군요.
4. 마스터신, 마스터개입
: NPC인 경우, 과묵한 캐릭터의 관점으로 현 상황을 재구성하는 장면을 만들거나 그런 관점을 노골적으로 환기시키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여차하면 회상신 같은 식으로도 전개할 수 있기에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 구현 난이도는 무척 낮고(특히 요즘은 대부분의 시스템에서 이를 시스템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 때만 2번, 3번을 동시 발동시킬 수도 있기에 효과도 꽤 좋습니다. 단, 자칫 오버하면 팝콘 플레이를 만드는 일이 벌어지기에 지나친 의존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5. TPO
: 이건 플레이 팁보단 연출기법에 가까운데, 실은 사람이 '과묵'과 '떠버리' 캐릭터를 나누는 기준은 '내가 듣고 싶은 얘기'를 얼마나 해주냐로 정해집니다. 중요한 분기점에 대한 정보나 의문점에 대한 해설은 아무리 길고 자세하고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하더라도 영양가를 유지하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묵' 캐릭터의 설정이 붕괴했다는 인상을 받지 못합니다. 스피드웨건과 설명충은 엄연히 다른 인간형이고, 스피드웨건은 특정 짤방만 떠돌아 왜곡되서 그렇지, 사실 죠죠월드에서 꽤나 입이 무겁고 쿨한 캐릭터에 속한다는 걸 떠올려보시길. 죠죠러가 아니라면, 다이의 대모험에서 미스트번이 중요 포인트에선 의외로 대사량이 많다는 점을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둘 다 안본 거라고? 여하간 여기까지 적었으면 뭔 얘기 하고 싶은지 알 거 아닌가.
자 이제. 실전에서 활용해봅시다.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