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한 전개를 위한 마스터링
본래는 느긋하게 전개하는 플레이도 나름의 맛이 있다고 보기에 별 말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멀리서 오신 마스터분이 빠릿빠릿한 플레이 없이 돌아가신다면 교통비와 시간의 압박이 지대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팀 전체적으로도 마스터의 출석률에 비해 캠페인 진도가 너무 느리면 상호 부담이 증대될 것 같아 가볍게 샤프한 전개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언을 드릴까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샤프한 전개를 끌어내는 마스터링의 대전제는 절대 마스터의 의도를 플레이어가 읽어내거나 시나리오의 맥락을 플레이어가 파악하는 것을 염두에 둔 마스터링을 하면 안된다는 것. 이건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RPG라는 유희를 숙달하는 데 있어서 결코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이는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들 뿐더러,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상호 미스커뮤케이션을 하다못해 역으로 상대가 미스리드를 저지르도록 끌고가는 것이 재밌어지는 안좋은 플레이 습관을 들이게 됩니다. 수십년간 알피지계에서 내려오는 격언을 잊지 마십시오. '플레이어의 로직과 말재주에 교섭신의 성패를 맡길 거라면, 전투신에선 라이브액션 현피로 판정해야하는거 아닌가?' 만일 마스터가 준비해둔 중요 포인트를 플레이어가 전혀 캐치해내지 못하고 있다면, 시나리오의 정보공급 문제와 마스터의 게임 리드(lead) 문제를 먼저 점검하십시오.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 샤프한 마스터링을 위해 여태까지 옛 선인(?)들이 개발해낸 3가지(정확히는 2가지) 테크닉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니 취향과 상황에 맞는 걸로 활용하시길.
1. 시나리오 맵
일본의 바바 히데카즈가 10년쯤 전에 제안한 방식으로 지금 돌이켜보면 현세대 일본식 RPG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먼저 준비된 시나리오를 장면(신) 단위로 배분해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이를 던전의 방 같은 관점으로 생각해 표시합니다. 그 신에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던전 내부 묘사와 같은 것이고, 이를 통해 도출해낼 수 있는 특정 키워드나 트리거, 플래그는 던전의 열쇠, 스위치, 비밀기믹 같은 걸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각 신과 신을 연결하는 플롯과 분기점을, 던전의 방과 방을 잇는 통로로 변환하십시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데, 이 작업을 준비를 위해서만 활용하는게 아니라, 마치 캐릭터가 실제 던전의 지도를 그리듯이 플레이어에게 공개하십시오.
해당 방식은 제일 직관적으로 플레이어가 캠페인의 전반적인 구도와 시나리오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자칫 잘못하면 선택과 그에 따른 주사위 굴림만 남는 보드게임의 형태로 빠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2. 시점변경-상호협동 스타일
RPG가 루즈한 전개가 되는 제일 큰 이유의 하나는 마스터가 3인칭 전지적 시점이고, 플레이어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생기는 정보불평등과 이로서 시작되는 불신감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본적인 구도 자체를 뒤집으면 어떨까 해서 만들어진 대안이 시점변경입니다. 마스터와 플레이어 모두 3인칭 전지적 시점이 되어 캠페인 정보와 시나리오 전망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에 맞춰 자신이 지닌 캐릭터의 스탯을 활용해 실제 장면을 연출 -연기가 아니라-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선 플레이를 마친 이후 피드백을 가지듯, 캠페인 시작 전이나 각 세션 시작 전에 상호간 합을 맞추기 위한 설계와 합의작업이 필요합니다.
해당 방식은 제일 범용성이 높으면서도 플레이의 퀄리티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 플레이 외적인 요인(특히 인간관계)이 플레이 내의 전개마저 침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3. 시점변경-피드백 스타일
시작은 2번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변조형이지만 이젠 별도의 방식이라 해도 좋을, 요사이의 새로운 트렌드입니다. 캠페인과 시나리오의 중추가 되는 최소한의 기본적 기믹 외에는 공백으로 남겨둔 채, 마스터와 플레이어 모두 1인칭 시점으로 각 장면을 연출하고 돌파해 갑니다. 판정의 성공, 실패 여부는 특정 난관을 극복했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난관을 누가 주도해서 연출해 공백을 메꾸는가 -결과적으로 극복 여부는 그게 누구에게 유리한가에 따라 결정되겠죠- 를 결정하게 됩니다. 마스터는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와 장면들을 짜맞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편집, 감독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를 위해선 참가자 모두 해당 룰과 캠페인이 추구하는 코드와 통용되는 클리셰를 이해할 것이 요구합니다.
해당 방식은 상호 미스리딩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다이나믹한 전개를 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애드립의 요소가 많아 장르적 교양이 없다면 번잡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세가지 방식은 실은 그렇게 상충되는 방식도 아니고, 두가지 혹은 세가지 방식을 섞어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시스템에 따라선 특정 방식과 영 궁합이 안맞는 경우도 있고 궁합히 맞는다 해도 섞을수록 밸런스 감각이 흐트러지기 쉽지요. 일단 제일 맞는 한가지를 선택한 다음에 차츰차츰 다른 방식의 요소들을 끼얹어가며 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최적 밸런스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베스트입니다.
그럼, 여기까지.
댓글 (1)
좋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향후 마스터링에 필히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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