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강좌 외전2 "그런데 도대체 RP라는 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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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좌 시리즈가 궁금하신 분은 위의 링크를 활용하시길)

한국의 RPG계에서 흔히 가지고 있는 오해 중의 하나가(처음에 PC통신 RPG동호회 등에서 이 떡밥이 나온지도 거의 10년이 훌쩍 넘었군요) RP라는 개념이 RPG 내부에 따로 존재한다는 관념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RP를 게임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 RPG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왜 이것이 마치 분리가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고 심지어 '롤플레잉+게임'이 RPG다라는 이론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는 뭐, 그 당시부터 봐왔던 저입니다만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거의 보드게임 감각으로 즐기는 분위기가 강한 미국은 그렇다치고, 스타일리시한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일본에서조차 한국에서 오해하는 RP 개념을 '롤플레잉'이 아닌 '캐릭터 플레이'라고 하거든요. 자신이 다루는 캐릭터에 감정이입하고, 그 개성을 표출하려 노력하는 행위는 그 캐릭터의 역할(롤)을 하는데 별 관계가 없습니다. 이걸 잘하면 연극인일 뿐이죠.

RPG에서 롤은 큰 범주의 롤과 그를 실현하기 위한 작은 범주의 롤로 구분됩니다.

큰 범주의 롤은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에 기반을 둔, 주동인물, 반동인물, 조력자, 트릭스터의 4분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동인물은 해당 세계의 법칙, 정의, 이상을 순순히 따르는 인물입니다. 여기에 영웅적인 성품을 가미한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들고 나서며 모두의 리더가 되는 인물이겠지요.
반동인물은 해당 세계의 법칙, 정의, 이상를 거부하는 인물입니다. 여기에 영웅적인 성품을 가미한다면, 세계를 변혁하는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이 되겠지요.
조력자는 주동인물이나 반동인물을 돕는 인물입니다. 여기에 영웅적인 성품을 가미한다면, 이런 인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때로는 이끌어주는 인물이 되겠지요.
트릭스터는 교착상태에 빠진 이야기 구조를 뒤흔드는 인물입니다. 트릭스터는 캐릭터 조형상 영웅적인 인물이 되긴 힘듭니다만 흥하면 해결사, 망하면 트러블메이커가 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지요.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저 4분위 중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 결정하고 이에 맞추어 행동합니다. 그 행동을 어떠한 방향으로 표출할지 결정하는 것이 작은 범주의 롤입니다. 이건 디펜더, 딜러, 힐러, 버퍼/너퍼, 누커의 5분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전투지향인 RPG에서의 구분이라 이런 표현이 되었지만, 실제론 표현만 조금 바꾸면 이 롤은 대화나 교섭, 정보수집 등에도 활용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디펜더는 다른 아군을 지키며 활약의 장을 만들어주는 인물입니다. D&D 4판이라면 디펜더 클래스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딜러는 펼쳐진 활약의 장에서 마음껏 활개치며 주어진 상황을 돌파하는 인물입니다. D&D 4판이라면 스트라이커 클래스와 일부 컨트롤러 클래스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힐러는 아군의 상태를 재정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인물입니다. D&D 4판이라면 리더 클래스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버퍼/너퍼는 아군이나 적에게 여러 이점과 난관을 만들어주는 인물입니다. D&D 4판이라면 컨트롤러 클래스와 일부 리더 클래스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누커는 평소엔 무력하다가도 조건만 갖춰지면 상황 전체를 뒤집어 엎는 한방을 선사하는 인물입니다. 기존 D&D에선 꽤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롤이었지만, D&D 4판에선 이 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밸런스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개념을 얘기하면 온라인게임이 아닌가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이는 사실 1970년대, D&D 퍼스트가 나왔을 때부터 존재했던 개념입니다.(파이터가 디펜더, 시프가 딜러, 클레릭이 힐러, 메이지가 누커였지요.) D&D가 아니더라도 클래스제의 RPG라면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지요. 실은 이를 온라인 콘솔게임의 형태로 구현한 것이 MMORPG인 것입니다.(하필이면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D&D 퍼스트가 간략함을 추구하다 못해 저 개념을 깔끔하게 표현하지 못했고, 그 다음으로 유명한 D&D 3, 3.5는 아예 시리즈 중 저 개념이 제일 붕괴한 구조였기에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하튼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큰 범주의 롤을 해내기 위한 작은 범주의 롤을 자신의 취향과 다른 플레이어와의 조화를 생각해 결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플레이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낸 시점에서 감정이입과 개성표출을 위한 캐릭터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그 연출이 자신의 롤과 갈등을 일으킬 때, 혹은 다른 플레이어의 롤과 갈등을 일으킬 때 어떻게 그 갈등을 해소해 목적한 바를 이루는가가 RPG란 게임의 묘미입니다.

댓글 (3)

김도완 2011.10.17 12:30
아무래고 영웅적이 필수인거 같습니다.
연기자보단 작가가 되야하는 걸까요?
RNarsis 2011.10.17 13:19
영웅적이 필수일 필요는 없음. 단지 현재 플레이하는 D&D 4판이 영웅적일 것을 전제로 하고 만들어진 룰이기에 부연설명을 붙인 거지.
다른 시스템이라면 뭐...
Djin 2011.10.19 23:16
재미있네요. 저는 RP란 감정이입이 들어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말 그대로 role만 잘 play하면 일단 role play가 되는 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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