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강좌2 "밉지 않은 바보 만들기"

오만하고 자아도취에 빠진 캐릭터를 만드는 캐릭터는 솔직히 파티 플레이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얼빠진 바보 캐릭터도 파티 플레이에는 어울리지 않죠.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바른 생활 정석 캐릭터를 만들 경우 그거만큼 재밌지 않은 것도 현실. 게임이라는 제약속에서 캐릭터의 개성을 얼마나 표출할 수 있느냐도 RPG의 재미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취향에 따라선 제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오만한 자아도취형 캐릭터에 비해, 얼빠진 바보 캐릭터는 플레이 도중 분쟁을 낳기 쉽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온라인이라면 모를까, 오프라인에서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오만한 자아도취형 캐릭터로 잘난척하긴 힘들고, 농담이든 진담이든 딴지도 실시간으로 들어옵니다. 본인도 이런 설정을 만드는 시점에서 오버한다는 자각을 하기에 조절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죠.(조절이 안된다고요? ...조절하세요.) 그런데 얼빠진 바보 캐릭터는 플레이어 본인이 오버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난 그냥 손해보는 짓을 할 뿐이고, 어차피 딴지 걸리고 묵살되라고 만든 거니까 괜찮을 거야. 모두들 마음껏 괴롭히라구."
"모두 나를 말려줘요. 난 이럴 수 밖에 없는 캐릭터야."(!경-20년 전통의 RPG할 때 제일 듣기 싫은 말 당첨-축!)

라는 도망칠 구석을 심리적으로 만들어 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오만한 자아도취 캐릭터 만큼이나 다른 플레이어들을 재미없게 할 위험성이 큽니다. 받아주지 않으면 파티 내 트러블 메이커가 활개를 치고, 받아주면 일일이 딴지걸기 피곤하거든요. 이러다가 서로 기분이 상하고 분쟁이 일어날 때도 많죠. RPG에선 이런 캐릭터들이 도무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얼빠진 캐릭터는 수많은 이야기에서 꽤나 매력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만, 어째서 RPG에선 매력이 없을까요. 수많은 이야기 구조에선 '완벽하지만 한 군데 나사가 빠짐' 혹은 '총체적으로 얼빠진 녀석이지만 이를 극복'이라는 전제 하에 캐릭터를 구성하고 이야기 속 역할을 배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RPG에선 이런 네러티브, 전술적 역할 구조를 플레이어 개인의 힘으로 좌지우지하기 힘들기에 얼빠진 바보 캐릭터는 '평범한 민폐'가 되기 쉽상인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바보를 '밉지 않게' 연출할 수 있을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부러 일을 망치지 말고, 망했을 때 자신의 개성을 어필'하는 겁니다.

'겁쟁이 전사' 캐릭터는 전투 중 공포에 걸렸을 때나 대화 중 위협에 당했을 때, 도주해야하는 장면이 나올 때 적극적으로 겁에 질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치매걸린 마법사' 캐릭터는 전투 중 자신의 마법이 실패했을 때나 지식, 지혜 기반 스킬 등에 실패했을 때 치매기를 보여줍니다.
'멍한 성녀' 캐릭터는 쓰러지거나 아무 행동도 못하게 될 때 왜 이렇게 된 건지 상황 이해를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폭주, 전투광' 캐릭터는 정말 문답무용으로 싸울 수 밖에 없는 장면에서 선제공격하려 노력하고 전투 중 현혹이나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 발광합시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의 캐릭터는 '바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다른 플레이어에게 줄 수 있으며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어필할 수 있습니다. 싱거울 것 같다고요? 한 번 직접 해보시길.

Ps. 이렇게 적어두면 또, 일부러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스탯으로 만들어두고 그걸로 대처할 수 밖에 없는 쪽으로 상황을 몰고 가며 어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부러 그렇게 안해도 실패할 일은 많고, 그건 정말 대놓고 파티내 플레이어 전체에게 시비거는 셈이니 자제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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