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일본 전국시대 정보 2 -태합입지(1582~1598)-
혼노지의 변 직후, 노부나가의 부하 다이묘로 혼노지 근처에 주둔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케치를 피해 고향땅 미카와까지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이가 닌자의 잔당(?) 핫토리 한조는 그 도피행각을 결사 지원함으로서 도쿠가와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다. 엄밀히 따지면 도쿠가와는 노부나가의 부하로, 일족을 멸망시킨 노부나가를 생각하면 손을 잡을 수 없는 존재 -아케티 미츠히데의 배반에 이가 닌자 생존자도 가담했다는 야사도 존재한다- 였겠지만 한조는 독립 자치 세력으로서의 닌자의 허망함을 이가의 붕괴에서 깨닫고 닌자의 긍지 보단 일족의 번영을 선택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베팅했다.
한 편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했을 때 천하포무에 가장 가까이 있던 세력은 모리 가문이었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힘을 기를 수 있었고, 자원이나 인구도 풍부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배를 경험했지만, 치명적인 패배는 아직 겪지 않았고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망 직후 후방을 염려하여 급조로 모리의 조건부 항복을 종용해 받아낸 다음 도망치듯 중부 지역으로 돌아갔다. 바로 항복 조약을 파기하고 마음이 급했떤 히데요시의 뒤를 쳤다면 천하를 제패하는 건 모리 가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창업주 모리 모토나리로부터 3대. 이미 초반의 기세도 능력도 잃어버린 모리 가문은 편안한 항복에 안주했다. 여담이지만 모리 가문은 천하를 잡을 기회를 3번 놓치게 되는데, 이게 그 첫번째다.
히데요시는 바로 군사를 돌려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츠히데를 격파한다. 의문의 패배를 당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도주 도중 부하의 배신으로 죽게 된다. 아케치를 격파하고 당시 혼노지에 있던 노부나가의 핏줄 중 유일한 생존자인 노부나가의 큰 손자 산보시를 옹립한 히데요시는 이로서 노부나가의 재산과 권력을 장악할 전통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시바타 가츠이에는 노부나가의 셋째 아들을 내세워 히데요시를 몰아내려 하였다. 1년간에 걸친 전쟁 끝에 히데요시는 시바타를 자살시키고 우에스기 가게가츠(우에스기 켄신의 아들)의 항복을 받아 노부나가의 내부 세력을 통합하고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노부나가의 사후 독자적인 세력을 만드려 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히데요시와의 최초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히데요시가 책임을 진 전투 중 최초의 패배다- 아직은 때가 아님을 깨닫고 히데요시에게 항복한다.
이후 남쪽의 섬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었던 큐슈의 시마즈와 도사의 조소카베의 항복을 받은 히데요시는 북쪽의 호조 가문의 항복도 받아낸다. 마지막으로 일본 최북단 깡촌 오슈의 다테 마사무네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1보 직전에 실패한지 9년 후인 1590년 일본을 통일한다. 통일 특수로 일본엔 호경기가 찾아왔으며 노부나가를 의식해 예술을 장려했던 히데요시의 정책으로 인해 문화도 발전하였다. 말년 조선 침공의 실책이 그의 공을 거의 말아먹었지만, 일개 평민의 신분에서 천하포무를 실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생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성공담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도요토미의 통일 방식은 오다 노부나가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악마라고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오다 노부나가는 공포로 지배하며 중앙집권 체제를 만들었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히데요시는 군사적 우월성을 과시한 다음,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평민 출신이었기에 이미지 관리를 하지 않으면 천하를 얻을 수 없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중앙집권은 히데요시 말년으로 갈수록 물건너간 얘기가 되어버렸고, 패배한 이후에도 각자의 세력을 잃지 않은 채 인질과 세금만 바치는 센고쿠 다이묘들은 히데요시의 치세가 얼마가지 않을 것이라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본은 통일되었으되, 그 통일의 끈은 매우 불안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히데요시는 벼락출세하였기에 대를 이어 충성하는 신하들이 부족했고 덕분에 도요토미 가문과 가신이라 할만한게 존재하지 않았으며 덕분에 인재 활용의 폭이 매우 좁았다. 더군다나 그는 자손이 귀해 말년에야 늦동이 아들을 보았기에 그가 성장할 때까진 자신의 체제를 공고히 구축할 후계자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고민과 걱정에 가득찬 채 사망했고 그의 염려는 20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부록 - 알아두면 유리할(지도 모르는) 인물 데이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전국시대 3대 영웅 중 하나. 우리나라엔 음침한 치매 악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서에 기록된 그는 평민들의 영웅으로 어두운 면이 없는 쾌활한 성격을 과시했다고 한다. 바늘장사를 하던 중 노부나가의 하인에서 시작하여 승진을 거듭해 20대엔 노부나가 군의 병참과 공병을 관리하고 40대에 들어선 확실한 넘버2의 자리를 구축하게 된다. 사람, 특히 민간인이 죽는걸 싫어했다고 하며 덕분에 전쟁을 극력 회피하였다. 하지만 병참과 공병 분야에 있어선 귀신의 영역에 달해있으며 이에 관련된 전설도 많다. 원숭이란 이미지가 많지만 당시엔 쥐새끼라고 불렸던 듯. 한손의 손가락이 6개인 기형으로, 술은 즐기지 않지만 여색은 매우 밝혔다고 한다.
아케치 미츠히데
:오다 노부나가의 심복. 초창기에는 그가 노부나가의 넘버2적 자리에 있었다. 문무를 겸비한 남자로 실제로 조정의 벼슬을 하기도 하고, 여러군데의 다이묘에게서 녹봉을 받는 -충신불사이군이라지만, 그건 일본 전국시대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자신만의 독자 세력이 있는 무장이라면 주군을 옮기거나 다중계약(?)을 맺거나 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시대다.- 등 그 능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처가쪽 친족이었기에 노부나가에 대한 불만이 많더라도 스스로 무너트릴 이유가 없는 그가 왜 배신을 하였는지, 배신한 이후엔 왜 어영부영있다가 히데요시와의 싸움에서 자멸하듯이 패했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코에이도 모른다.(.........)
사나다 마사유키
:시마 사콘, 나오에 가네스구와 더불어 당시 3대 병법가로 불린 남자. 천하를 제패할 기량을 가졌다고 인정 받았지만 워낙에 가진 영토가 좁았다. 능력 발휘도 못하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타케다->우에스기->호조->우에스기->도요토미로 계속해서 주군을 바꿔갔던 그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오기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왔을 때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그의 아들이었다.
다테 마사무네
:북쪽 오슈를 제패한 애꾸군의 다이묘. 독안룡이라고 불렸다. 30년만 먼저 태어났어도 천하의 한 축이 되었을 것이라 인정을 받는 남자로 전국시대 말기 모두가 신경도 안쓰던 오슈에서 젊은 나이에 커다란 세력을 일구어 냈다. 하지만 그 당시 이미 일본 전역의 구할을 차지했던 도요토미 앞엔 어떻게 손도 발도 내밀 방법이 없었다. 항복한 이후 다테 마사무네는 도쿠가와에게 접근한다. 꿍꿍이는 간단하다. 만약에 두 세력이 부딫히는 때가 온다면 다시 독안룡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한 편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했을 때 천하포무에 가장 가까이 있던 세력은 모리 가문이었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힘을 기를 수 있었고, 자원이나 인구도 풍부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패배를 경험했지만, 치명적인 패배는 아직 겪지 않았고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사망 직후 후방을 염려하여 급조로 모리의 조건부 항복을 종용해 받아낸 다음 도망치듯 중부 지역으로 돌아갔다. 바로 항복 조약을 파기하고 마음이 급했떤 히데요시의 뒤를 쳤다면 천하를 제패하는 건 모리 가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창업주 모리 모토나리로부터 3대. 이미 초반의 기세도 능력도 잃어버린 모리 가문은 편안한 항복에 안주했다. 여담이지만 모리 가문은 천하를 잡을 기회를 3번 놓치게 되는데, 이게 그 첫번째다.
히데요시는 바로 군사를 돌려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츠히데를 격파한다. 의문의 패배를 당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도주 도중 부하의 배신으로 죽게 된다. 아케치를 격파하고 당시 혼노지에 있던 노부나가의 핏줄 중 유일한 생존자인 노부나가의 큰 손자 산보시를 옹립한 히데요시는 이로서 노부나가의 재산과 권력을 장악할 전통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시바타 가츠이에는 노부나가의 셋째 아들을 내세워 히데요시를 몰아내려 하였다. 1년간에 걸친 전쟁 끝에 히데요시는 시바타를 자살시키고 우에스기 가게가츠(우에스기 켄신의 아들)의 항복을 받아 노부나가의 내부 세력을 통합하고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노부나가의 사후 독자적인 세력을 만드려 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히데요시와의 최초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히데요시가 책임을 진 전투 중 최초의 패배다- 아직은 때가 아님을 깨닫고 히데요시에게 항복한다.
이후 남쪽의 섬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었던 큐슈의 시마즈와 도사의 조소카베의 항복을 받은 히데요시는 북쪽의 호조 가문의 항복도 받아낸다. 마지막으로 일본 최북단 깡촌 오슈의 다테 마사무네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1보 직전에 실패한지 9년 후인 1590년 일본을 통일한다. 통일 특수로 일본엔 호경기가 찾아왔으며 노부나가를 의식해 예술을 장려했던 히데요시의 정책으로 인해 문화도 발전하였다. 말년 조선 침공의 실책이 그의 공을 거의 말아먹었지만, 일개 평민의 신분에서 천하포무를 실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생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성공담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도요토미의 통일 방식은 오다 노부나가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악마라고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오다 노부나가는 공포로 지배하며 중앙집권 체제를 만들었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히데요시는 군사적 우월성을 과시한 다음,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평민 출신이었기에 이미지 관리를 하지 않으면 천하를 얻을 수 없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중앙집권은 히데요시 말년으로 갈수록 물건너간 얘기가 되어버렸고, 패배한 이후에도 각자의 세력을 잃지 않은 채 인질과 세금만 바치는 센고쿠 다이묘들은 히데요시의 치세가 얼마가지 않을 것이라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본은 통일되었으되, 그 통일의 끈은 매우 불안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히데요시는 벼락출세하였기에 대를 이어 충성하는 신하들이 부족했고 덕분에 도요토미 가문과 가신이라 할만한게 존재하지 않았으며 덕분에 인재 활용의 폭이 매우 좁았다. 더군다나 그는 자손이 귀해 말년에야 늦동이 아들을 보았기에 그가 성장할 때까진 자신의 체제를 공고히 구축할 후계자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고민과 걱정에 가득찬 채 사망했고 그의 염려는 20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부록 - 알아두면 유리할(지도 모르는) 인물 데이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전국시대 3대 영웅 중 하나. 우리나라엔 음침한 치매 악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서에 기록된 그는 평민들의 영웅으로 어두운 면이 없는 쾌활한 성격을 과시했다고 한다. 바늘장사를 하던 중 노부나가의 하인에서 시작하여 승진을 거듭해 20대엔 노부나가 군의 병참과 공병을 관리하고 40대에 들어선 확실한 넘버2의 자리를 구축하게 된다. 사람, 특히 민간인이 죽는걸 싫어했다고 하며 덕분에 전쟁을 극력 회피하였다. 하지만 병참과 공병 분야에 있어선 귀신의 영역에 달해있으며 이에 관련된 전설도 많다. 원숭이란 이미지가 많지만 당시엔 쥐새끼라고 불렸던 듯. 한손의 손가락이 6개인 기형으로, 술은 즐기지 않지만 여색은 매우 밝혔다고 한다.
아케치 미츠히데
:오다 노부나가의 심복. 초창기에는 그가 노부나가의 넘버2적 자리에 있었다. 문무를 겸비한 남자로 실제로 조정의 벼슬을 하기도 하고, 여러군데의 다이묘에게서 녹봉을 받는 -충신불사이군이라지만, 그건 일본 전국시대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자신만의 독자 세력이 있는 무장이라면 주군을 옮기거나 다중계약(?)을 맺거나 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시대다.- 등 그 능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처가쪽 친족이었기에 노부나가에 대한 불만이 많더라도 스스로 무너트릴 이유가 없는 그가 왜 배신을 하였는지, 배신한 이후엔 왜 어영부영있다가 히데요시와의 싸움에서 자멸하듯이 패했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코에이도 모른다.(.........)
사나다 마사유키
:시마 사콘, 나오에 가네스구와 더불어 당시 3대 병법가로 불린 남자. 천하를 제패할 기량을 가졌다고 인정 받았지만 워낙에 가진 영토가 좁았다. 능력 발휘도 못하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타케다->우에스기->호조->우에스기->도요토미로 계속해서 주군을 바꿔갔던 그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오기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가 왔을 때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그의 아들이었다.
다테 마사무네
:북쪽 오슈를 제패한 애꾸군의 다이묘. 독안룡이라고 불렸다. 30년만 먼저 태어났어도 천하의 한 축이 되었을 것이라 인정을 받는 남자로 전국시대 말기 모두가 신경도 안쓰던 오슈에서 젊은 나이에 커다란 세력을 일구어 냈다. 하지만 그 당시 이미 일본 전역의 구할을 차지했던 도요토미 앞엔 어떻게 손도 발도 내밀 방법이 없었다. 항복한 이후 다테 마사무네는 도쿠가와에게 접근한다. 꿍꿍이는 간단하다. 만약에 두 세력이 부딫히는 때가 온다면 다시 독안룡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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