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일본 전국시대 정보 1 -천하포무에서 혼노지의 변까지(1551~1582)-
*일본의 경우 관직이 오르면 이름이 바뀌고, 아명이 있는 등 하여 서양식으로 이름이 길게 늘어나거나 이름 자체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선 편의를 위해 통칭만 적는다.
*실제 역사와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면, 내 개인적 해석 혹은 캠페인을 위한 변조다. 그다지 신경쓸 정도는 아닐 듯.
1467년 오닌의 난으로 인해 여태까지 일본을 지배하던 중앙정부 무로마치 막부는 그 이름만 남은채 붕괴한다. 각 지방에선 막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다스리는 영주들이 생겨났는데 이를 '센고쿠 다이묘'라 한다. 영주간에 정통성이 없었기에 영토 싸움이나 하극상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이런 혼란기인 1477년부터 1590년까지를 전국시대로 부른다.
뭐 말이 전국시대지, 다이묘들의 목적은 가문 유지였기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할거체제를 유지하려했지 일본을 통일하려는 망상을 가진 다이묘는 없었다. 오다 노부나가라는 광기의 남자가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바보 영주로 불렸던 사실은 유명하다. 그는 밥을 먹을 시간이 아깝다며 군것질을 입에 달고 다녔고, 걷는데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다며 말을 타지 않으면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골목을 활보했다. 체통을 중시하던 사회에선 유례가 없는 방만함이다. 모든 이의 반대를 이겨내고 1551년 18세의 나이로 아버지에게서 승계해 오와리의 영주가 된 오다 노부나가는 10년 가까이에 걸쳐 오와리 내부의 반대 세력을 당근과 채찍으로 포용한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그를 주목한 사람은 옆나라인 미노의 영주이자 오다의 장인인 사이토 도산 정도 밖엔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 최강세력은 일본 북부에 위치한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이었으며 역시 북부에 위치한 호조 우지야스 정도가 그들을 견제할만한 세력이었다. 남쪽엔 남쪽의 최강국가 모리 가문과 큐슈와 도사등 섬을 지배하는 조소카베, 시마즈 일파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었다. 오다가 지배하는 오와리는 이들 거대 세력에 비하면 물자도 인구도 풍부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바로 옆에 일본 중부에선 최강의 다이묘라 할 수 있는 이마가와 요시토모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국가에 바보 영주가 승계받았다고 해서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하지만 1560년. 오다 노부나가는 도박에 가까운 기습으로 이마가와 요시토모와의 전쟁에서 승리. 갑자기 유망세력의 하나로 떠오르게 된다. 다른 다이묘였다면 이런 승리에 기뻐하며 부실해진 내정을 수습하여 안정된 가문 유지를 꿈꿨겠지만 오다 노부나가는 이 시점에서 천하포무(천하통일)을 자신의 목표로 선언한다. 이마가와를 멸망시켰다고 해도 세력의 크기로 감안하면 5위권에 들까말까한 세력이 이렇게 큰소리를 치니, 오다 노부나가의 세간의 평가는 바보에서 미친 놈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생각은 이랬다. 현재의 국가 체제는 무사들에 의한 연합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를 중앙집권으로 바꿀 수 있다면 세력의 작음은 결집력으로 커버할 수 있고, 자원과 물자의 부족은 중부에 위치했다는 지리적 이점을 살린 상업의 발달로 커버할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개기는 부하나 친척이 있으면 내전을 일으키는 한이 있더라도 박살을 냈고, 상업과 교통을 방해하는 무리라면 그게 종교단체건 닌자무리건 박살을 냈다. 이런 계획을 바탕으로 오다 노부나가는 빠른 시간에 일본 중부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중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게 되어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노부나가의 매제이자 그 자신도 센고쿠 다이묘였던 아사이 나가마사의 두개골은 노부나가의 술잔이 되었고, 일본 최고의 종교단체였던 일향종은 바베큐 통구이가 되어버렸으며. 일종의 자치구였던 이가의 닌자 마을은 일부 간부만 살아남은 채 전멸하고 말았다. 노부나가의 평가는 이미 당대에 미친 놈에서 악마가 되었다.
유명무실했던 무로막치 막부를 무너트리고, 천황을 옹립하여 정통성을 획득하였으며 일본 영토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보였다. 북부의 3대 세력 중 하나인 타케다 가문도, 타케다 신겐 사후에는 노부나가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우에스기나 호조도 각자 방어만 신경쓸 뿐, 노부나가에 쳐들어갈 힘은 잃어버렸다. 노부나가는 이에 안심하고 자신의 심복이자 불패의 남자로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대부분의 병사를 주어 남쪽의 모리를 시작으로 남부 전역을 장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척박한 북부보다 남부의 해상무역을 중시했던 것이다. 히데요시는 남쪽에서도 순조롭게 이겨나가고 있었고, 천하포무는 눈 앞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반전은 예상할 수 없을 때 일어나기에 반전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진중 시찰하고 합류하기 위해 본거지를 떠나 이동을 했고, 수백의 호위병만 거느리고 혼노지라는 절에 묵었다. 오다의 부하인 아케치 미츠히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만여명이 넘는 자신의 병력으로 혼노지를 포위. 노부나가를 급습, 노부나가는 분전했지만 숫자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엔 자살하고 만다. 이 배반의 원인은 아직도 의문에 가득차 있다.
*부록 - 알아두면 유리할(지도 모르는) 인물 데이타
오다 노부나가
:전국시대 3대 영웅의 한 명. 정보 중시, 직업군인제, 조총3단 발포 등, 당시로선 서양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전술로 전국을 통일해간 남자. 도박에 가까운 전략으로 중간중간 참패도 많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결국엔 도박에 이겨 승리했다. 예술적인 취향이 있어 춤과 노래, 기마에 능했다고 한다. 조금 사디스틱한 경향이 있었는지 부하들을 험하게 다루었는데, 욕설은 기본이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질질 끌고간다거나, 얼굴이 파랗게 될 때까지 목을 조른다거나, 공처럼 걷어차 굴린다거나하는 짓을 잘했다. 이게 나름대로의 애정표현이라는 설도 있는데, 사실이라면 정말로 변태일 듯. 아케치의 배반엔 이런 구타에 따른 원한도 있었다고 한다.
타케다 신겐
: 카이의 호랑이란 별명을 가졌으며 전국 최강으로 소문난 타케다 기마부대 -뭐 그렇다고 해서 중세기사의 마상차지를 생각하면 곤란하지만서도...- 를 이끈 남자. 풍림화산이란 전술을 토대로 부대를 지휘했으며 오다 노부나가의 등장 전까진 천하포무에 제일 가까웠던 남자다. 하지만 후방인 북부를 무시하고 중앙 진출은 불가능했던게 결국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우에스기 켄신
: 에치고의 용이란 별명을 가졌으며 비사문천의 화신이라 자칭하는 정예부대를 이끈 남자. 전술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도 의와 협이라는 가치를 중시했으며 덕분에 인망과 사기가 높았다. 타케다와는 평생에 걸친 라이벌이었으며 승패를 나눠가며 서로를 인정해갔다. 당시 다이묘답지 않게 결벽증에 가까운 금욕적 태도를 보였으며 남녀관계, 남남관계에 빠지는 일도 지극히 삼갔다. 여담이지만 은영전의 얀과 라인하르트의 관계는 신겐과 켄신의 관계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실제 역사와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면, 내 개인적 해석 혹은 캠페인을 위한 변조다. 그다지 신경쓸 정도는 아닐 듯.
1467년 오닌의 난으로 인해 여태까지 일본을 지배하던 중앙정부 무로마치 막부는 그 이름만 남은채 붕괴한다. 각 지방에선 막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다스리는 영주들이 생겨났는데 이를 '센고쿠 다이묘'라 한다. 영주간에 정통성이 없었기에 영토 싸움이나 하극상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이런 혼란기인 1477년부터 1590년까지를 전국시대로 부른다.
뭐 말이 전국시대지, 다이묘들의 목적은 가문 유지였기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할거체제를 유지하려했지 일본을 통일하려는 망상을 가진 다이묘는 없었다. 오다 노부나가라는 광기의 남자가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바보 영주로 불렸던 사실은 유명하다. 그는 밥을 먹을 시간이 아깝다며 군것질을 입에 달고 다녔고, 걷는데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다며 말을 타지 않으면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골목을 활보했다. 체통을 중시하던 사회에선 유례가 없는 방만함이다. 모든 이의 반대를 이겨내고 1551년 18세의 나이로 아버지에게서 승계해 오와리의 영주가 된 오다 노부나가는 10년 가까이에 걸쳐 오와리 내부의 반대 세력을 당근과 채찍으로 포용한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그를 주목한 사람은 옆나라인 미노의 영주이자 오다의 장인인 사이토 도산 정도 밖엔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 최강세력은 일본 북부에 위치한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이었으며 역시 북부에 위치한 호조 우지야스 정도가 그들을 견제할만한 세력이었다. 남쪽엔 남쪽의 최강국가 모리 가문과 큐슈와 도사등 섬을 지배하는 조소카베, 시마즈 일파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었다. 오다가 지배하는 오와리는 이들 거대 세력에 비하면 물자도 인구도 풍부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바로 옆에 일본 중부에선 최강의 다이묘라 할 수 있는 이마가와 요시토모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국가에 바보 영주가 승계받았다고 해서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하지만 1560년. 오다 노부나가는 도박에 가까운 기습으로 이마가와 요시토모와의 전쟁에서 승리. 갑자기 유망세력의 하나로 떠오르게 된다. 다른 다이묘였다면 이런 승리에 기뻐하며 부실해진 내정을 수습하여 안정된 가문 유지를 꿈꿨겠지만 오다 노부나가는 이 시점에서 천하포무(천하통일)을 자신의 목표로 선언한다. 이마가와를 멸망시켰다고 해도 세력의 크기로 감안하면 5위권에 들까말까한 세력이 이렇게 큰소리를 치니, 오다 노부나가의 세간의 평가는 바보에서 미친 놈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생각은 이랬다. 현재의 국가 체제는 무사들에 의한 연합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를 중앙집권으로 바꿀 수 있다면 세력의 작음은 결집력으로 커버할 수 있고, 자원과 물자의 부족은 중부에 위치했다는 지리적 이점을 살린 상업의 발달로 커버할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개기는 부하나 친척이 있으면 내전을 일으키는 한이 있더라도 박살을 냈고, 상업과 교통을 방해하는 무리라면 그게 종교단체건 닌자무리건 박살을 냈다. 이런 계획을 바탕으로 오다 노부나가는 빠른 시간에 일본 중부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중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게 되어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노부나가의 매제이자 그 자신도 센고쿠 다이묘였던 아사이 나가마사의 두개골은 노부나가의 술잔이 되었고, 일본 최고의 종교단체였던 일향종은 바베큐 통구이가 되어버렸으며. 일종의 자치구였던 이가의 닌자 마을은 일부 간부만 살아남은 채 전멸하고 말았다. 노부나가의 평가는 이미 당대에 미친 놈에서 악마가 되었다.
유명무실했던 무로막치 막부를 무너트리고, 천황을 옹립하여 정통성을 획득하였으며 일본 영토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보였다. 북부의 3대 세력 중 하나인 타케다 가문도, 타케다 신겐 사후에는 노부나가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우에스기나 호조도 각자 방어만 신경쓸 뿐, 노부나가에 쳐들어갈 힘은 잃어버렸다. 노부나가는 이에 안심하고 자신의 심복이자 불패의 남자로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대부분의 병사를 주어 남쪽의 모리를 시작으로 남부 전역을 장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척박한 북부보다 남부의 해상무역을 중시했던 것이다. 히데요시는 남쪽에서도 순조롭게 이겨나가고 있었고, 천하포무는 눈 앞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반전은 예상할 수 없을 때 일어나기에 반전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진중 시찰하고 합류하기 위해 본거지를 떠나 이동을 했고, 수백의 호위병만 거느리고 혼노지라는 절에 묵었다. 오다의 부하인 아케치 미츠히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만여명이 넘는 자신의 병력으로 혼노지를 포위. 노부나가를 급습, 노부나가는 분전했지만 숫자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엔 자살하고 만다. 이 배반의 원인은 아직도 의문에 가득차 있다.
*부록 - 알아두면 유리할(지도 모르는) 인물 데이타
오다 노부나가
:전국시대 3대 영웅의 한 명. 정보 중시, 직업군인제, 조총3단 발포 등, 당시로선 서양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전술로 전국을 통일해간 남자. 도박에 가까운 전략으로 중간중간 참패도 많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결국엔 도박에 이겨 승리했다. 예술적인 취향이 있어 춤과 노래, 기마에 능했다고 한다. 조금 사디스틱한 경향이 있었는지 부하들을 험하게 다루었는데, 욕설은 기본이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질질 끌고간다거나, 얼굴이 파랗게 될 때까지 목을 조른다거나, 공처럼 걷어차 굴린다거나하는 짓을 잘했다. 이게 나름대로의 애정표현이라는 설도 있는데, 사실이라면 정말로 변태일 듯. 아케치의 배반엔 이런 구타에 따른 원한도 있었다고 한다.
타케다 신겐
: 카이의 호랑이란 별명을 가졌으며 전국 최강으로 소문난 타케다 기마부대 -뭐 그렇다고 해서 중세기사의 마상차지를 생각하면 곤란하지만서도...- 를 이끈 남자. 풍림화산이란 전술을 토대로 부대를 지휘했으며 오다 노부나가의 등장 전까진 천하포무에 제일 가까웠던 남자다. 하지만 후방인 북부를 무시하고 중앙 진출은 불가능했던게 결국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우에스기 켄신
: 에치고의 용이란 별명을 가졌으며 비사문천의 화신이라 자칭하는 정예부대를 이끈 남자. 전술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도 의와 협이라는 가치를 중시했으며 덕분에 인망과 사기가 높았다. 타케다와는 평생에 걸친 라이벌이었으며 승패를 나눠가며 서로를 인정해갔다. 당시 다이묘답지 않게 결벽증에 가까운 금욕적 태도를 보였으며 남녀관계, 남남관계에 빠지는 일도 지극히 삼갔다. 여담이지만 은영전의 얀과 라인하르트의 관계는 신겐과 켄신의 관계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댓글 (2)
"다시 전국시대가 되었으니." 라고 할거면 대우를 잘 해 주던가.
아무튼 고생이 많군요.
'한조가 일행에게 서운하게 대했다' 정도는 있어야....
일행에게 야망이 있으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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